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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가. 안가. 잘가. 난어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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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ncntrjin 2023. 11. 17. 1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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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달아 어떤 소식들이 몰려온다. 올해의 끝과 시작에 맞춰 이 도시에 그리고 내 집에 들이게 될 친구들의 연락. 걔들이 여기에 오면 나는 우리가 될 것이고 그 안의 나는 오다가다 하겠지. 그런 나를 떠올리면 어쩐지 긴장이 조금 되는게 역시 난 쿨한 사람과 거리가 멀다.
다른 하나는 결혼 소식. 지난주 금요일 파리에 신행을 온 현이를 만났고 걔가 물고온 기억을 따라 그저께 박의 예식 날짜를 가족 다음으로 알게됐다. 오늘은 아침에 눈을 떴더니 용이가 대뜸 스토리 답장으로 “님 저 내년에 결혼함다” 하고 보내왔다.  내 반사적인 첫 반응은 “ㅋㅋ 하쒸 언제.” 본인부터가 갑작스러운 이 청년은 아이가 생긴건 아니라고 덧붙인다.
안 보이던게 보이니까 기분이 이상하다는 말도 했고 나는 아 다르고 어 다른건데 이상하긴 하다고 말을 얹었다. 뒤늦게 얼떨떨함을 떨치고 축하한다는 말을 이었다. 정말 축하하니까. 기쁘다. 기쁘면서도 나도 어딘가 한 겹 덮게되는 아침이었다.
이제 “아직 제일 친한 친구들 중엔 없긴 한데~”의 말의 유통기한은 다했다. 샤워하러 들어가려다 말고 헐벗은 채로 메시지를 이어갔다. 모르던 바 아닌 일이 일어났을 때, 언젠가는 그러겠더니 했던 일이 새삼스럽게 정말 그렇게 됐을 때 이런 미묘하고 복잡한 마음을 겪는다. 삶은 더 기다려주지 않는다는 인상을 받았다. 일어날 일들은 일어나고 시간은 흐른다. 내가 게을러왔던 일들이 뒤통수에서부터 날아와 귀옆을 스쳐간다. 남들의 시계보다 조금 늦은 것들도. 정신이 서서히 그치만 명확히 들었다. 바다를 뚫고 나오는 일출의 모양처럼, 색은 좀 달랐다. 어슴푸레한 어둠과 오렌지 빛이 서로 역할을 바꾼 것 같았다. 아니, 흐리멍텅하고 탁한 병아리콩 스프 색이 지루하게 펼쳐진 배경에 영롱한 곤색 빛줄기가 꿰차는 느낌이었다. 하여튼. 
마음의 준비고 자시고 그런게 더 심란하고 이것도 나쁘지 않다는 말을 했다 우리 예비신랑이. 맞다. 지금 이 돌연함이 오래간 유지되지는 않겠지만 앞으로 너희가 달리는 레이스 옆길을 따라 나도 뜬 눈을 번쩍이며 더 자주 너희 쪽을 쫓으며 속도를 올려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우리 삶의 길목이 너무 벌어지진 않았으면 하는 내 친구들아. 결혼 그만들 좀 해라! 농담이다. 다시 한번 축하한다. 어쩐지 마음이 단단해진 아침이고 어제 밤 퇴근길보다도 보폭을 넓혔다.
11월16일 09시2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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