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년의 성탄을 시작으로 24년 첫 주까지 이어진 바캉스. 오늘은 그 주말의 저녁이고 마지막 약속을 나서기 직전 작은 틈을 내어 자리에 앉았다. 어젠 올리비아 딘이었는데 오늘은 드뷔시가 내 목을 붙잡고 있네. 기도가 막힌 것처럼 숨을 깊게 마셔도 어딘가 시원치 않다. 음악을 꺼야할까 싶다가도 멈출 수가 없다. 이런게 아니고선 이 공허를 채울 기운이 오늘은 없어가지구.
이상 기온이 분명할 만큼 따뜻한 이번 겨울은 낮에 두 자릿수 기온을 기록하는 날이 많았다. 연말이 몰고 온 가벼운 찬 기운은 노랗고 퍼렇고 붉은 혹은 더 형형색색의 불빛들과 섞여서 거리를 더 그럴 듯하게 만들고 있었다. 연말연시의 느낌은 이제 다 빠질 때가 되었는데도 떠날 때를 놓친 크리스마스 장식들은 아직 길가의 가게들, 우리 아파트 현관에도 여전하다. 일어난지 한참 됐는데 침대에서 허우적거리던 어제 오늘 내 모습같다. 가야할 때를 알면서 왜들 그러나 몰라.
올 겨울은 23년과 지난 삼년의 나를 묶어보는 기간으로 남았다. 넘어가는 해나 나이 따위의 숫자에는 무감각하더라도 무언갈 정리해야하는 기점으로 작용하는 것이 년도와 한국행이다. 나는 더 달라졌다. 가벼워졌고 이기심을 발휘하고 무심해지거나 뻔뻔 혹은 용감해지고 뭐 그런거. 부작용도 작용이니까 그런 것도 살살 골라가며 삼킨다. 12월 중순 놀러왔던 대학 시절 친구는 우리의 추억과 더불어 여태껏 쌓여온 경험까지 더해 생동한 흐름을 몰고 왔다. 덕다이빙이 미덕인 생활을 하던 나는 기꺼이 그 위에 올라타보기로 했고 그 파도가 부서질 즘 도착한 곳이 이 저녁인 셈이다. 일부러 눈부신 쪽으로 걸었고 각기 다른 모양의 다리들을 여러 번 건넜다. 예상한 것 하나 없었고 지키려던 계획은 모두 밀려났네. 그치만 덕분에 다채로운 낮과 빛나는 밤들을 보냈다. 달을 자주 봤고 강의 물결만큼 멀리 흘렀다. 열린 나를 만날 수 있어 반가웠네 고마운 사람들아. 그런 나를 또 찾아 주실래요 여기 내가 있다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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